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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차 개발자의 스타트업 퇴사 회고
    카테고리 없음 2022. 8. 14. 02:31



    작은 스타트업 팀에서 있었던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돌아봅니다. 대학원을 못 붙을 것 같아서, 지원한 회사들에 떨어져서 도망치듯 인턴십에 지원했고 그 후 3년간 대기업에서 흐르듯 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직장이지만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흘러가기만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과거를 계속 되돌아 보기만 했습니다. 좀 더 주체적이었던 시간들, 좀 더 열심이었던 시간들, 안 되면 분하고, 잘 되면 온전히 기뻤던 시간들을 말입니다. 전 과거를 빛났다고 규정하고, 현재를 퇴색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흘러가기만 할 수 없어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일단 다른 물살을 타보자. 어쩌면 작은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도 다른 물살에 몸을 던진거나 다름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회사에 저를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환경, 책임이 막중하여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자리, 대기업 출신이라는 많은 기대가 저를 되찾아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물살은 제 생각보다도 깊고 빨라서 어쩌면 스스로 버티는 법을 깨우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 3개월은 제대로된 온보딩 없이 서비스 런칭을 위해 몸 던져야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1년 반만에 다시 FE 개발을 시작했고, 퍼블리셔가 없어 마크업 개발부터 익혀야 했습니다. 첫 페이지 개발에만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또 3년간 막내였던 제가 그 곳에서는 주니어 FE 개발자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코드리뷰를 해주는 상황이 어색했습니다. 다행히 어깨가 무겁다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쁘게 흘러간 덕분에 무사히 런칭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당연히도 그 후 잠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출근시간이 늦어지고, 퇴근시간도 늦어지고. 업무 텐션이 떨어졌습니다. 매니저님은 그런 저를 위해 기획이라는 도전과제를 던저주셨습니다. 교환반품 프로세스를 직접 제로부터 기획해보면서 서비스 기획이 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은 알게되고, 또 관련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맡게 된 어드민 기획 및 개발 업무는 주도적인 문제해결과 조율, 개발까지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FE 개발을 하며 하드코딩을 피하기 위해 각 기능들을 어드민에 시스템화 했고, 하나하나 시스템화하며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과정이 정말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은 팀의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는 기쁨이 가장 컸습니다. 어드민 개발을 맡아 하며 관련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 해 나가는 과정도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팀이 되어갔던 것 같습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성공시키며 성장했고, 성공의 경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캠페인, 상세페이지 템플릿, 리뉴얼 모두 너무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들입니다. 커머스에서 발생하는 프로모션들을 일반화하여 기획하고, 타 광고 플랫폼들을 참고하며 만든 캠페인 시스템은 논리 퍼즐을 푸는 것처럼 어렵지만 정말 큰 성취를 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가 함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BE, Biz팀을 찾아가고, PO와 정리하며 어디에도 없는 캠페인 시스템을 쌓아올렸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환경이기에 우리에게 딱 맞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어느 곳에서든 제게 많은 용기를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비교적 작은 이슈에서 시작됐지만 저에겐 큰 도전과제였던 상세페이지 템플릿 시스템 개발은 온전히 저 스스로 해결했기에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타 서비스 어드민에서 착안해 시작했고, 구글폼에서 구현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약간의 템플릿 제한을 둔다면 더 자유롭고 통일감있는 상세페이지 디자인이 가능한 모델을 설계했습니다. 상세페이지 내용을 일반화하여 템플릿으로 나누고, json으로 저장, 웹에서 읽어내 스타일을 적용하면 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어드민에서 기능을 구현하며 어려움이 있었지만 끝내 해결해 낸 제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웹 리뉴얼은 디자인-개발 커뮤니케이션의 정점이었습니다. 개발가이드를 작성해본 적 없는 주니어 디자이너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우리만의 디자인-개발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스스로도 디자이너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처음이라 정답을 내려주지 못해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기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주니어 FE 개발자를 이끌어가며 디자이너의 작업물에 빠짐없이 맞추기 위해 중간에서 바쁘게 일했었습니다. 이 서비스가 비록 부족해보이더라도,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임에 지금도 무엇 하나 부끄럽지는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초에는 비즈니스 서포트를 위한 일들을 주로 했습니다. 사실 납득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남들이 다 있기 때문에 우리도 있어야 한다는 기능들을 만들때는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커머스 서비스니까. 비즈니스 팀이 필요하다는 도구를 만들어준다는 목적 하나로 해낸 일들이었습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저의 개발 능력치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지만 제가 이 회사에 더이상 있지 않게된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저의 등을 조금씩 바깥으로 떠밀었습니다. 첫 1년동안 치열하게 일 하는게 무엇인지 알고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한 사람에게 다시 흘러가라고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납득하지 못한 일은 재미가 없었고, 팀의 일원이 아닌 외주 개발자처럼 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인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진행한 일들이었기에 우리는 최고를 만들 수 없었다고 감히 평가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그 시작과 과정이 좋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팀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팀이었고, 그 시작은 더 좋아야 했습니다.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올해는 아쉬움과 더불어, 첫 신입을 받은 해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첫 면접준비를 하던 때, 첫 온보딩 하던 때의 설렘을 앞으로도 느낄 수 있을까요.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개발공부를 스스로 더 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쳐주려면 적어도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점점 정수를 깨달아가는 모습을 보며 두 배로 바쁜 와중에 즐거웠습니다. 또한 기존 주니어의 개발 능력치 향상을 위해 시도했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철저한 코드리뷰, PR리뷰 오답노트, 알고리즘 코딩 스터디 및 코딩테스트 진행을 하며 주니어의 문제점 파악과 성장을 위해 제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제 부족함을 탓하며 힘들기도 했습니다. 어렵고, 저에게도, FE 주니어에게도 아쉬운 시간들이지만 서로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어느 누구에게도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퇴사를 결정하며 마지막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어느 상황이나 어느 사람에게 휘둘리지않고 우리가 이 회사에 들어올 때 기대한 그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비로소 회사로부터 한 발짝 멀어졌기에 시작 가능했던 것이 모순적이지만 다행이었습니다. 모두의 머릿속에 있었기에 비교적 빠르게 완성도 있는 기능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일년 반동안 훈련해온 문제 정의, 해결 방식이 기획단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Building block을 정의하는것에서 시작해서 확장성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UX리서치부터 기획에 참여했고, 해당 기능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개발도 했습니다. 저희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세상에 보여졌고 이제 우리의 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쉽지 않습니다. 잘 떠나보낸 기분입니다. 후련합니다.

    처음엔 흘러가는 것이었을지라도, 그 물살을 즐기고, 이겨보려 노력하고, 가끔은 힘들어 하고, 또 힘을 합쳐 파도를 느껴보고, 그리고 그 파도 위에서 서핑도 했습니다. 서핑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서핑에 비유를 하는게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회사에서 저는 서핑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성장했습니다. 성공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또 도전할 용기를 얻고, 실패를 온전히 아파하며 포기하는 법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그저 휩쓸리지 않으려 매 순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기회만을 만날순 없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남지 않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그 선택을 좋은 방향성으로 남기느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린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에서의 1년 반은 나의 자리를 찾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과거의 제가 현재의 저보다 빛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제가 더 빛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가 두렵지 않습니다. 진심을 다 해 느낀 성공와 실패의 경험들이 저를 채우고 제 발판이 될 것입니다.

    아쉽고 후회되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아깝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련이 남는 퇴사라 더 소중합니다. 저에게 의미있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 선택이 전혀 후회되진 않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믿어주고, 밀어주고 당겨준 동료들에게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성장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물살을 즐기는 법을 알았으니 이젠 저에게 쉼을 줄 예정입니다. 쉼을 통해 나에게 맞는 물살을 찾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럼 우선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온전히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엔 도망치듯 다른 물살로 뛰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에게 맞는 물살을 잘 골라볼 예정입니다. 물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경험으로 남길 힘이 제겐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겁내지 않으려합니다. 이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것이기에 더 기대됩니다.

    다음 선택을 하기위해 다양한 분들과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시고, 진심을 다 하는 곳이라면 편하게 연락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일과 FE, 개발에 대한 질문이나 고민이 있는 분들도 편하게 연락주세요. 이야기 나누는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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